# 이른 새벽,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 곳으로..

 새벽에 인천공항으로 향해야하기에 잠을 잘 수가 없다.
 4년전의 설레임과는 비슷한 듯 다른, 약간은 태연스러움을 가지고 인천공항으로 향한다.
 4년 전의 그때와 마찬가지로 새벽에 나서는 나를 어머니께서 배웅해 주신다.

 '잘 다녀올께요.'
 
 짤막한 인사와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 곳으로의 첫 발걸음을 내딪는다.
 공항으로 향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익숙하다.
 그리고, 잊고 지냈던 4년전의 내 모습이 창가의 풍경과 함께 스치운다.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설레임으로 떠났던 그때와는 다르다.
 내 삶은 4년이라는 시간동안 감당하기 힘들만큼 치열해졌다. 
 어쩌면 이러한 현실의 삶을 잠시나마 잊고 싶었던 것 같다.
 
 다시 이 길위에 서게 된다면 그때보다 조금은 행복한 모습으로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치열한 삶의 전쟁터에서 도망쳐 버리는 모습이다.


# 혼자다.

 여느때와 다르지 않다. 홀로 떠나는 여행이다.
 조금은 쓸쓸할 법도 하지만, 익숙해져버린 외로움이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붐비는 공항, 사람들의 얼굴은 여행에 대한 기대감에 상기 되어 있다.
 그 가운데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진 내가 서 있다.
 긴 비행시간의 지겨움과 힘겨움을 보낸다.
 유럽땅을 다시 밟지 않는 다면, 이 긴 비행시간을 좁은 공간에서 견뎌야 한다는 점이 클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파리에 도착하기도 전에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시간을 걱정하게 된다.

 여행을 위한 준비의 시간은 없었다. 떠나야 할 날이 되어서야 배낭을 채우고 한국을 떠나 프랑스 땅을 밟은 것이다. 하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지난 시간의 경험들 때문이였을까? 그냥 그렇게 여행을 시작했다.
 

# 생쟝으로..

파리 - 몽파르나스

파리 - 몽파르나스


 프랑스로 입국했지만, 이 곳에서 시간을 보낼 생각은 없었다. 나에게는 그리 낭만적인 도시도 아니요. 목적을 가진 도시도 아니였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기차를 타고 바욘으로 향하고, 늦은 저녁 4년전 내가 머물렀던 호텔에 다시 체크인을 한다. 기차를 타기전 사두었던 빵으로 저녁 식사를 대신하고 창밖 펼쳐진 바욘을 바라본다.
 한국의 새벽에서 바욘의 저녁시간까지 쉴틈없이 달려온 듯 하다. 
 조금은 여유를 가져도 되지만, 그저 빨리 내가 이 여행을 시작한 목적. 그 길 위에 다시 서고 싶은 마음이였다.

바욘

바욘


 4년전의 시작과 비슷하게, 기차가 출발 하기 전 바욘 성당에 들려 잠시나마 기도를 하고 생장으로 향했다.
 바욘에서 부터 한국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중요치 않게 스친 그 인연이 산티아고로 향하는 여정동안 계속될 줄은 그 순간에는 알 수 없었다.


# 같은 공간, 다른 사람들..

생쟝

생쟝


 예전의 기억 속의 공간과 변함 없는 생장의 모습이다. 내 추억 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했던 것은 조금은 욕심이였던 듯 싶다. 하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맑고, 밝은 비소로 생장에서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을 시작하는 나를 맞이해 주신다.
 바욘에서 부터 스친 한국분들과 생장에서 접수를 하고, 나는 그들을 위로 하고 발카로스로 향했다.
 

# 이 길위 다시 선 이유

 현실로 부터 잠시 도망쳐온 나이지만, 이 길위에 선 나만의 이유가 있었다.
 이 길을 다시 걸으면서 4년 전에 남겼던 후회를 다시 남기지 않고 싶었다.
 더이상 이 길 위에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 이 곳을 다시 찾은 것이다.
 추억을 쫒아 이 길을 걷되, 그때 가졌던 추억을 지우고, 그때 가졌던 미련을 지울 수 있었으면 했다.
 

# 이제 시작이다.

 발카로스로 향하면서 4년전의 순간을 떠올린다.
 산길을 헤메고, 겨우 겨우 발카로스에 도착해서 보냈던 첫날 밤. 그리고, 그 순간의 소중했던 추억들.
 하지만, 그 추억은 이제 없다. 또다른 현실의 순간이 기다릴 뿐이다.
 
 발카로스의 알베르게에 들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명록을 들춰보지만, 4년전 나의 흔적들은 이미 사라져버린지 오래이다. 그때의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며, 그 순간을 같이 나눴던 이들의 가슴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추억을 지워내는 것이다.
 내가 받음으로서 가질 수 있었던 추억을 지워내고, 내가 베품으로서 누군가의 추억 속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것.. 그 것이 내가 이 길 위에 선 이유일 것이다.


# 발카로스의 새로운 첫날 밤.

 발카로스의 알베르게에 자리 잡고 쉬고 있는데 생장에서 헤어졌던 한국분들이 생장의 번잡스러움을 피해 이곳까지 첫날의 여정을 시작했다.
 그들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그 번잡스러움이 싫었던 것 같다.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일행과 함께 이 길을 걷는 다는 것. 그 것 하나만으로 그들의 여정이 부러웠다.

 4년전의 낭만적인 첫날 밤과는 또다른 아늑한 첫날밤을 맞이한다. 
 아직까지 내가 다시 이 길 위에 서 있다는 것이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다.
 쌀쌀한 겨울 밤의 공기를 들이쉬며,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막연히 바라볼 뿐이다.


Trackback address :: http://www.janus.pe.kr/blog/trackback/1218

Comments List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