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시간을 떠올리는게 힘들다.

 다시 일상 생활로 돌아와 바쁜 하루를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가는 곳곳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요, 순례자 여권(크레덴시알)을 간직하고 있는 것도 아니요.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고, 다시금 떠올릴 만한 매개체가 부족하다.
 그렇기에 정신없이 하루 하루를 보내고, 주말에는 피곤함에 다른 생각을 가질 여유를 찾지를 못하게 된다.
 시간을 내어 지난 여행의 발걸음을 다시 떠올려보려 하지만, 예전의 여정처럼 기억이 선명하지 않다.
 그만큼 내 목적에 맞게 내 발걸음을 맺음지었기 때문일 수 도 있다.

 여전히 바쁘고, 여전히 머리는 뒤죽박죽이다.
 현실은 고통이다.



# 익숙해지자 나의 발걸음에..

 무리를 할 생각도 없고, 생장에 도착하기 까지 쉬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기에 초반의 발걸음은 지난 여정의 시작을 떠올리며 걸었다.
 발카로스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 이르는 길은 예전 나의 기억보다 험난했다.
 길은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았고, 예전보다 노란 화살표는 그 색이 옅어지고 별다른 보수의 흔적이 보이질 않아 지난 여정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아쉬움으로 다가 왔다.

발카로스 - 론세스바예스

발카로스 - 론세스바예스



 그래도 예전에는 이 길의 끝에서 다시 보아도 반가울 인연들과 시작을 같이해 아쉽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철저히 혼자의 시작이였다.

 남들보다 일찍 나와 걸었고, 남들보다 일찍 도착해 쉬었다. 그것이 내가 길을 걷는 방식이였고, 내가 이 길을 즐기는 방법이였다.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

 너는 왜이렇게 일찍 알베르게를 나서냐고.. 그리고, 도착해서 무엇을 하냐고..
 새벽 밤하늘에 가득찬 별빛과 어둠속 눈 밟히는 소리, 그리고 그 공간에 오직 나만이 사색할 수 있는 시간.
 그것으로 나에게는 충분했으며, 어느 마을에 머물건 지난 여행동안 내가 가지지 못했던 여유를 찾을 수 있으면 그것이 나에게 행복이였다.
 
 나는 나를 위해 이곳에 왔다.
 나를 위한 길을 누군가를 의식하며 포기할 수는 없다.
 그것은 나에게 또다른 미련과 후회를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 만남, 이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산티아고로 향하는 발걸음 속에서 만남과 이별은 수없이 반복된다.
 또한 그것이 이 길을 걷는 즐거움 중 하나라는 것에 공감한다.
 첫날 여정을 발카로스에서 같이한 이들은 론세스바예스를 뒤로 하고 조금 더 먼 길을 향해 나섰다.
 나 때문에 불편함을 느꼈던 것은 아닌지 다소 신경이 쓰였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 도 없는 노릇이다. 물론, 묻는다 해도 직설적으로 대답해 줄 이는 없을테고..
 그렇게 이별을 하고, 새로운 이들과 론세스바예스에서 새로운 인연을 시작한다.

 모두 다 좋은 사람들이다.
 나만이 나쁜 사람일 뿐이다.
 

# 붐비는 곳이 싫다.

론세스바예스를 떠나며..

론세스바예스를 떠나며..


 지난 밤, 좁은 론세스바예스의 숙소를 새벽녁 아무도 깨지 않은 시각 배낭을 메고 나와 또 하나의 여정을 시작했다.

 담배를 피러 나온 형님뻘 한국분과 이시간에 나서는 것은 미친짓이라고 서로 농담을 건네지만, 나를 그 미친짓을 시작한다.

 론세스바예스의 밤하늘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산티아고까지의 여정 중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밤하늘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동이 트기까진 남은 시간을 캄캄한 속에서 숲속길을 걸어야 했다.
 그런데 그것마저 즐거움이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거친 숲속길을 걸으면서 어제 론세스바예스의 북적임을 피해 보다 많은 거리를 걸은 이들이 걱정됐다.
 오늘 혹은 내일 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레 소식을 듣게 되겠지..
 어쩌면 그 이별이 마지막이 될 수 도 있을테고..


# 수리비의 추억을 지워내다.

 수리비에서 참 즐거웠던 추억이 있다. 
 술에 취해 알베르게 문 닫는 시간에 맞춰 달려왔던 순간.. 
 여기 저기 이야기 꽃으로 만개한 술자리..

 하지만, 오랫만에 찾은 수리비에서 그때의 기억을 지워낸다.
 그때의 순간, 그 행복함은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임을 다시 상기시킨다.

 누구보다 일찍 길을 나섰지만, 발걸음은 점심 즈음 수리비에서 멈춘다.
 그리고, 나만의 발걸음을 서서히 준비한다.

 붐비는 곳을 피해, 조금은 어긋나게, 그리고, 나의 길을 걸으면서..



Trackback address :: http://www.janus.pe.kr/blog/trackback/1219

Comments List

Writ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