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우 ‘아버지의 땅’을 읽고..

 


분단이라는 우리 민족 고유의 현실과 경험들이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가게 만든다. 지금은 아픔의 흔적이라는 것이 희미해졌지만, 누군가들의 가슴 속에 잊어버리고 싶은 아픔으로 남은 흔적들이 다가갈 수 없는 곳과 마주 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한 눈물은 지울 수 가 없는 것이다.

전쟁이 지나간 세상과 그 속의 사람들 모두 상처를 지니고서 살아가고 있다. 상처를 치유해줄 날을 기다리거나, 그리워하는 이를 마주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면서 눈물을 가슴 속에 흘리면서, 슬픔을 애서 감추면서 살아간다. 폐허가 된 세상과 사람들의 지친 모습들 속에 차마 상처를 그리고 그리움을 드러내지 못하고서 살아가는 이가 있다. 원치 않은 이별을 가져오고, 그로인해 홀로 자식을 키우면서 겪었을 고생 속에서 북녘 땅을 바라보며 한없이 그리움에 잠기는 화자의 어머니이다. 그녀가 아들에게 아버지의 존재에 대한 사실을 숨겨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아버지의 정당치 않은 행동들에 대해 아들에게 숨기고 싶어서 일까, 다시 마주 할 수 없는 이에 대한 희망을 주기 싫어서 일까. 결국, 자신이 감당하고 있는 현실의 아픔을 감당하면서까지 어딘가에 있기를 바라는 자신의 그리움을 지키고 싶고, 아들이 사실을 알았을 때 어머니 자신이 감당해야 할 또 다른 현실의 아픔을 외면하기 위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무성한 풀 숲 어딘가에서 오랜 시간 잠을 자고 있는 지난 시간들의 흔적들, 유골이라는 것이 막연한 그리움으로 애써 희망을 꿈꾸었던 이들의 대상 인 것 이다. 마을의 노인 역시 화자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상처 가득한 그리움을 간직한 사람이다. 유골이 발견 되었을 때 그것의 주인이 혹여 자신이 기다리던 사람이 아닌가 생각할 만큼 이루어질 수 없는 기다림이고,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죽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화자 역시 상처를 가슴이 숨기고 살아가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꿈속에서 기억에서 조차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게 되고, 환영으로서 그리움을 표출하게 되는 모습이 가슴 속에 묻어 놓은 상처가 상황의 유사성에 의해 먼지를 털어내고 무의식에서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세대와 세대를 건너 세습되는 상처의 모습을 그리며, 우리의 분단 역사가 낳은 상처인 것이다. 하지만, 한 세대를 건널수록 상처와 아픔의 정도는 치유되고 시간이 흔적을 희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 조차 점차 그 상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분단이라는 것을 경험한 세대와 그 경험을 지켜본 이들이 사라져가고 역사적 사실의 아픔도 인지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우리는 다시 경험하지 못한 사실과 동화될 수 없는 감정을 ‘이해’를 통해 전하는 방법만이 남게 된다.

결코, 희망적이지 못한 기다림이지만, 누구도 바보라 말하지 않는다. 가슴 속 상처를 숨기고 살아가지만 누구도 들춰내려 하지 않는다. 시간이라는 것이 상처를 낳게 해주는 것일까? 아니면 흔적들을 지워내 가는 것일까?

오늘 더 이상 실감할 수 없는 현실이 계속될 뿐이다.



2008/05/31 02:17 2008/05/31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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