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정 : Hospital de Orbigo => Astorga

# 신체의 한계점에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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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실망스런 감정을 떨쳐버리려 억지로 걸어서일까.. 이른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기가 힘들기만 하다.
 어젯밤 같이 보낸 아저씨는 자신의 경험담을 말해주며 Rabal del Camino 까지 40km를 걸을 것을 추천해준다.
 하지만, 나의 몸상태도 하늘의 상태도 오늘 여정에 대한 확답을 내려주지 못한다.
 하늘에선 따가운 빗방울들이 내려대고, 아직은 어두운 길을 나서는 아저씨에게 이별의 인사를 건넨다.

 가만히 베란다에 나와 앉아, 담배 한대를 물고 세상의 동이 트길 멍하니 바라본다.
 어떠한 생각 조차 할 수 없다.
 언제나 처럼 혼자만의 적막감이 찾아든다.
 오늘도 몇일째 계속되는 혼자와의 싸움이 계속 될테지..

 주인 부부는 늦잠을 자는 듯 내가 길을 나설때까지 알베르게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기부함에 저녁과 아침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 돈을 넣어놓고 길을 떠난다.
 마을의 경계점에서 도로길과 마을을 통하는 길로 나뉘는 갈림길을 맞이하고, 한동안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마음은 그들이 추천해준 마을을 통과해서 걷고 싶지만, 몸이 아우성이였다.
 결국, 도로 옆으로 나 있는 길을 걸기 시작하지만 1km를 걷지 못해 등을 지배해 오는 통증때문에 배낭을 내려놓고 빗방울 속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30분여를 그렇게 멈추어있었던 것 같다.
 몸을 추스려 길을 걷지만, 다시 발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걷고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통증이 견딜만해지고 천천히 발걸음을 계속했다.

# Astro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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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방울은 우비 위로 흘러내리고, 바지는 흘러드는 빗방울들에 젖어갔다.
 오늘 Rabanal del camino 까지는 가는 것은 무리였다.
 얼마를 걸었을까, 언덕 밑으로 마을이 펼쳐지고 Astroga 를 향해 억지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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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troga 의 풍경들 -

 Astroga 에 들어설 무렵 뒤에서 한 스페인 청년이 인사를 건넨다.
 너무나 반갑다. 잠시 뿐의 만남이지만...
 언덕 위를 올라서니 공사중인 듯한 알베르게가 눈에 띄었지만, 그 외관에 잠시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배낭을 빨리 벗어놓고 쉬어야 겠다는 생각에 알베르게로 들어섰다.

# 새로운 인연.

 오늘 몸 상태때문에 걷는 것을 포기해서 일까?
 일찍 배낭을 풀어놓고, 쉬고 있으니 사람들이 하나 둘씩 침대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이들의 만남 순간에는 알지 못했지만, 남은 카미노 여정 중 내게 소중한 추억을 남겨주게 되는 인연이 된다.
 독일 청년, 미국연인, 스페인 청년, 한국 분...
 더 이상 기억이 불확실하지만, 좁은 방안에 사람들이 가득찼다.
 얼마만의 만남인가..
 
 지금 돌이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소중한 이들의 이름이나 사진 하나 없이 오로지 내 가슴 속에 기억과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화를 나누더라도 이름이나, 개인적인 것은 묻지 않고 이 길위의 것들에 집중했고,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기 싫었던 것 같다.
 정말 내가 원했던 순간에는 하늘이 그것을 방해하기도 했지만...
 간단히 저녁을 먹자는 한국 분을 따라 마을 구경을 나서고, 한참이나 어울리지 않는 수다를 나누게 된다.
 그만큼, 대화가 그리웠던 것 같다.
 평소의 나 같으면 귀찮아했을 것 같은 저녁 식사와 이야기 자리...
 내가 변하고 있는 것일까?
 
 오랜만의 떠들석함 그리고, 다시찾아드는 밤의 적막감..
 몸은 무척이나 힘들지만, 마음은 언제보다 평온해지는 잠자리를 갖는다.



 


2013/02/25 20:27 2013/02/25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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